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생애 (문단 편집) === 이집트 원정: 실패 === [[파일:이집트 나폴레옹.jpg]] 나폴레옹은 인도에 식민지를 가진 [[영국]]을 견제하고자 [[이집트 원정]]을 원했고, 혁명정부도 나폴레옹의 인기가 높아지자 견제하려는 속셈으로 이를 수락한다. 사실 나폴레옹은 1797년 8월부터 영국을 항복시키려면 이집트를 점령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으나, 1798년 3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이집트 원정을 준비했고, 4월 14일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이집트 원정은 1798년 5월 19일에 시작되었다. 350척의 함선과 5만 4,000명의 장병을 싣고 투롱 항을 떠난 것이 5월 19일이었으며, 나폴레옹은 이 원정의 목적이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아일랜드를 점령하는 데 있다는 허위정보를 퍼뜨려, 영국의 넬슨 제독 함대로 하여금 지브롤터 해협을 지키게 했다. 그 사이에 나폴레옹은 몰타 섬을 점령한 후 이집트로 향했고, 6월 31일에는 알렉산드리아 항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카이로로 출발하였다. 7월 2일에는 당시 이집트를 장악하고 있던 [[맘루크]] 군대와 큰 접전을 벌였는데, 이 접전에서 나폴레옹은 휘하 장병들에게 '''이 피라미드 위에서 4,000년의 역사가 귀관들을 내려보고 있다'''고 격려했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나폴레옹의 연설같지만, 프랑스 원정군의 사기를 높이기에는 충분했고, 쉽사리 맘루크의 군대를 격파하며 이튼 날 카이로까지 승승장구하며 입성했다. 그러나 와중에, 프랑스 해군이 [[호레이쇼 넬슨]]의 영국 해군에게 박살나 퇴로가 끊기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 재탈환을 위해 선전포고를 하게 되어, 요격을 겸해 내친 김에 시리아 원정까지 감행했으나 [[아크레]] 공방전에서 [[제자르 파샤]]의 수비에 막혀 결실없이 물러났고, 프랑스 본국이 다시 오스트리아의 위협을 받게 되자 이집트를 탈출해 귀국하였다.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오스만 제국은 물론이고 흑해에서 지중해로 남하하려는 러시아 제국에도 크게 자극을 주었으며, 이는 영국, 러시아, 오스만 투르크 세 나라의 반불 동맹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됐다. 러시아는 남부 이탈리아와 나폴리 왕국과 동맹을 맺고, 영국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었다. 이리하여 1799년 봄부터 프랑스는 이집트 원정의 역효과로 제2차 반불 동맹 국가들과 전면적인 교전 상태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